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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가람: 江 2018. 2. 11. 22:30

2018. 01. 24. - 2018. 01. 27.





말의 품격

이기주 저





 2017년 말 커피를 제대로 배워보겠다 마음을 먹고, 학원에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배우고, 또 취업에 이르기까지 참 많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커피 하는 사람들의 어떤 특징인건지 아니면 그런 사람들만 만난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커피 선생님들은 모두 말을 듣기 좋게 한다는 특징이 있었다. 같은 뜻의 이야기를 해도 더 듣기 좋게 전달하는 그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내겐 너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는데, 그러던 시기에 우연히 알게된 이 책은 내게 있어서 더욱 호기심이 생기는 책이었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p.17]

 책 속에서 작가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말을 잘하기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 내가 그 때 왜 그런 말을 들은거지?!'보단 '아 내가 그 때 왜 그런 말을 했지?!' 때문에 잠들기 전 이불을 뻥뻥 걷어차는 날이 더 많다.





인간은 자연을 닮은 소우주다. 인간의 말은 작은 우주에서 생명을 얻는다. 그러므로 들리는 것을 듣는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다.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포착해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 상대방이 가슴에서 퍼 올린 말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p.25]

 읽으면서 정말 여러번 끄덕끄덕한 대목.(사실 끄덕끄덕 했다는 대목은 많다. 쿄쿄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행하기 정말로 정말로 힘이 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들에게서 듣는 이야기에 도무지 나를 이입시키기 힘들 때가 있다. 그게 어떤 이야기든간에 내가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말에 숨겨진 본질을 읽어내 가슴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일. 정말로! 쉽지 않다. 그러고보면 '좋은 리스너'란 말은 보통 칭찬이 아니란 생각도 든다. 그들이 말하는 '잘 들어주는 사람'은 단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말의 본질을 읽어내주고, 내 말을 가슴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일테니까!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면 정말 좋겠다... 쥬륵!)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의 충돌이다.

충돌은 두 주체가 서로 맞부딪치고 맞서는 것이다. 마찰을 일으킨다. 갈등을 낳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내뱉는 "내가 당신을 이해할게요"라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완벽히 뿌리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오히려 갈등과 다툼질 앞에서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사실을 업신여기지 않을 때 오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리고 그 순간, 어쩌면 마음 한 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p.44]

 어느 날 든 생각이다. '나는 말 앞에 '에이~'가 붙는 사람은 싫어.'. 나는 평소에 누군가 나를 침해해오지 않는 이상 다름을 인정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만다. 그래서인지 나는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 누군가 내 의견에 "에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라는 식의 답을 받아버리면 어이가 없다. '에이~'가 문제다. '에이~'에는 '에이~ 그건 아니지~'라는 무조건적인 부정과 타인의 생각을 업신여기는 태도가 숨겨져있다고 느껴진다. 보통 그렇게 '에이~'로 시작해서 한참 논리적인 척 언쟁을 벌이다 이내 쩝쩝거리며 "그래. 뭐."로 끝맺음한다. 또 대개는 이게 얼마나 일방적인 대화인지 본인들만 모른다! 다행히 이런 류의 사람과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아 내 주변에 남아있진 않지만, 이렇게 세상엔 타인의 우주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작가의 말처럼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의 싹이 돋아나려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말을 잘하진 못하더라도,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에게서건 존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상하니 화나네... 꿀밤 때려주고 싶다!)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은 대개 말이 아닌 침묵 속에 자리하고 있다. [p.60]

타인의 말에 쉽게 낙담하지 않고 가벼운 질책에 좌절하지 않으며 자신이 고수하는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바로 둔감력이다. [p.77]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계속 달릴 수만은 없다.

어쩌면, 어떤 순간에는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반응해야 하는지 모른다.

좋은 의미의 둔감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 [p. 80]

 와타나베 준이치가 말했다고 한다. '본인이 어떤 일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지를 자각하고 적절히 둔감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조금 예민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의 내게 와닿은 문장이었다. 타인의 말, 가벼운 질책에도 좌절하지 않고 내 신념과 철학을 바탕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힘!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둔감력!




정말이지... 최대한 선명하게 찍으려고 해봤지만 이게 최대다! (분노)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을거라고 생각하는 문장. 왜냐하면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장 많이 보았던 문장이었고, 또 내가 정말 많이 공감했고, 좋아하는 문장이니까!

 커피를 배울 때 만났던 선생님들이 아직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건 아마도 그 분들의 말에서 뿜어져나오던 그들 고유의 좋은 향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문장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내뱉는 단어들엔 어떤 향기가 묻어있으려나.





언젠가 한 번은 "눈은 왜 차가운 거죠?" 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설명했다.

"눈? 눈은 수증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변해버린 거야."

"정말요? 그런데 왜 변해요? 그냥 수증기나 물의 모습으로 떨어져도 되잖아요?"

"응, 그건 말이지, 지구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물컹물컹한 상태로 땅에 닿으면 금방 사라지잖아."

"아, 지구에 오래 머물고 싶어서..."

[p. 149]

 가까운 친구들에게 늘 '나는 딩크족이다!'를 외쳐대는 나지만 적은 확률로 훗날 생각이 바뀌어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의 그 어떤 엉뚱한 질문에도 동화처럼 답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대목.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 정원을 살짝 엿보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 동네 어귀 한 귀퉁이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빼꼼히 들여다보는 심정으로 질문이라는 까치발을 들어보면 어떨까.

어차피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세상살이의 근본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p.150]

 나는 그래서 귀찮음, 피곤함을 무릅쓰고 언제나 사람들을 궁금해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빼꼼히 들여다본다는 그 심정이 너무 이해가 된다. '너는 어떤 사람이야?'. 아! 물론 아무 정원은 아니다. 나는 '아름다운' 정원만 빼꼼히 들여다본다!(크크) 그리고 빼꼼히 들여다보던 아름다운 정원을 마침내 함께 거닐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누는 그 모든 순간들이 좋다! 그리고 요즘은 항상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고로 행복하다!





 '말'에 대한 생각과 노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스물여섯번의 해만큼 깊어야하고, 앞으로도 쌓여가는 나날들만큼 묵직해져야한다. 실천이 어려워 아직 나는 그만큼의 무게를 가지진 못했지만, 노력하면 될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말은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내뱉은 말들은 고스란히 내게 다시 닿고, 그것들이 쌓여 내 모습이 된다.

 2017년, 향기 지닌 '말'로 내게 기억된 사람들처럼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좋은 향기를 지닌 '말'로 남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