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호주 워킹홀리데이/조잘조잘

두번째 겨울

가람: 江 2018. 6. 4. 22:41


# 겨울 준비


 여기는 춥고, 또 비가 옵니다. 한국과 다르게 이 곳은 겨울에 우기가 시작되어 한동안 추위와 함께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해요. 문득 비와 겨울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비와 재즈, 푹신한 침대, 따뜻한 커피나 차, 이 모든 것들은 겨울에 더 잘 어우러지죠. 멀리서부터 받아 내던지듯 걸어두었던 코트들을 하나 둘씩 정리합니다. 물을 묻히고, 뜨거운 바람을 쏘이면 차츰 원래의 모습을 찾아 구김들이 사라지게 되어요. 아침 일찍 문을 나설 때마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올 때마다 피부에 닿았던 찬 공기가 떠올라 구석에 접어두었던 목도리도 눈에 보이는 곳에 꺼내놓습니다. 장갑은 왠지 챙기면 짐이 될 것 같아, 아직은 그 자리에 두고 옷장 앞에 잠시 서서 혹여 잊은건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해봅니다.


 겨울을 지나, 봄을 지나, 다시 겨울로 향하는 나는 사실 고작 네달만에 맞는 겨울 공기가 그다지 좋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는 것도 신물이 나고, 집에 가만히 앉아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것도 싫증 났기 때문에요. 그런데 지난주, 친구와 잠시 걸음했던 시티의 풍경은 내 마음을 아주 쉽게 돌려놓았습니다. 지날 때마다 늘 예쁘다고 생각했던 나무의 화려한 조명과 시티에 모여든 사람들, 음악 소리, 불 지핀 냄새. 왜인진 모르겠지만 10년 전, 아니면 훨씬 더 이전의 겨울 그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순간 시티에 존재한 모든 것들 중 어느 하나와, 과거의 기억 어느 것들 중 하나가 접점을 이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맞는 이 겨울을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답게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해요. 많은 음악들과 책. 따뜻한 기운. 특별한 장소. 소중한 사람. 그렇지만 겨울비처럼 가능한 한 소소하고,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 내 계절에 머물러준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비는 그쳤고, 밖은 조금 더 차갑게 가라앉았겠지요. 왼편에서 소리없이 김을 내던 차도 이제는 고요히 자리를 지킵니다. 내 고향의 계절에도 이 기운이 조금은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머무는 이 곳은 이렇게 다시 겨울의 품 속으로 깊숙이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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